매월 돌아오는 결제일, 통장 잔고가 바닥난 카드 이용자의 눈앞에 번쩍이는 문구가 있다. "카드 대금 전액 대납, 연체 방지, 신용도 상승 보장." 당장 연체자가 되어 신용점수가 폭락하고 금융거래가 정지될까 두려운 이들에게, 카드 대금을 대신 갚아주고 카드 한도를 복원해 준다는 이 제안은 거부하기 힘든 동아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른바 ‘카드 대납 대출’은 결코 채무자를 구원하는 제도가 아니다. 당장의 연체를 며칠 뒤로 미루는 대가로 폭력적인 수수료를 뜯어내고, 결국 채무자를 신용불량과 형사처벌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불법 사금융의 덫이다.
카드 대납의 작동 구조는 단순하면서도 기만적이다. 사채업자나 불법 대납업자가 결제일 당일 회원의 카드 대금을 대신 입금해 일시적으로 카드 이용 한도를 살려놓는다. 그다음 한도가 복원된 카드로 즉시 허위 물품 결제나 가공 거래를 일으켜 현금화하는 ‘카드깡’을 자행하거나, 카드론·현금서비스를 최대치로 뽑아내 대납 원금에 10~30%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수수료를 얹어 회수해 간다.
채무자가 체감하는 시간은 고작 반나절에서 며칠에 불과하지만, 이를 연이율로 환산하면 수백에서 수천 퍼센트에 달하는 살인적인 폭리다. 연체를 막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다음 달 결제일에는 대납업자가 긁어간 결제 원금과 카드사 수수료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돌아온다. 결국 또 다른 대납을 부르고, 다중채무의 늪에 빠져 파산으로 직행하게 된다.
더 치명적인 문제는 법적·제도적 리스크다. 여신전문금융업법 제70조는 허위 매출전표 작성이나 물품 구매를 가장한 자금융통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불법 대납업자는 물론이고, 이에 응해 카드를 넘기거나 결제에 가담한 이용자 역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형사처벌을 피하더라도 금융감독원과 신용정보원에 ‘금융질서문란자’로 등록되는 순간, 최장 12년간 카드 발급 전면 금지, 대출 제한, 신규 계좌 개설 거부 등 정상적인 사회·경제 활동이 사실상 마비된다. 연체라는 작은 불을 끄려다 개인의 금융 생명줄 자체를 태워버리는 격이다.
결제 대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 상황에 부딪혔다면, 불법 대납업자를 찾을 것이 아니라 합법적이고 공적인 채무조정 기구로 직행해야 한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신속채무조정(연체 전 또는 연체 30일 이하)'이나 '프리워크아웃'을 신청하면, 연체 이자 감면과 상환 유예를 통해 합법적으로 숨통을 틔울 수 있다. 서민금융진흥원의 소액생계비대출이나 지자체 금융복지상담센터 역시 위기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다.
신용카드는 현금을 무한정 공급하는 마술 상자가 아니며, 카드 대납은 빚을 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더 잔혹한 빚을 얹는 속임수일 뿐이다. 눈앞의 연체를 감추기 위해 바닷물을 들이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파국을 늦추려 할수록 치러야 할 대가는 가혹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달콤한 불법 대납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의 부채를 직시하는 용기다.